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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차도 갇힌 2명 사망..침수·산사태로 고립됐던 10여명 가까스로 구조
지하철 무정차 운행·열차도 중단..만조 겹쳐 도심하천 역류·범람
시간당 최대 86mm 집중호우..해운대 211mm·기장 204mm 등 물폭탄

침수된 부산 지하차도 인명구조…1명 숨져 (부산=연합뉴스)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 제1지하차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 갇혔던 60대가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2020.7.24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itbull@yna.co.kr
침수된 부산 지하차도 인명구조…1명 숨져 (부산=연합뉴스)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 제1지하차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 갇혔던 60대가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2020.7.24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itbull@yna.co.kr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박성제 김선호 기자 = 부산에 시간당 8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데다 만조 시간까지 겹쳐 도심이 물바다로 변한 가운데 침수된 지하차도에 갇힌 차량에서 구조된 2명이 치료 중 숨졌다.

산사태, 옹벽 붕괴, 주택과 지하차도 등이 침수돼 10여 명이 고립됐다가 구조됐고, 많은 차량이 물에 잠겼고 수십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기차·전철 일부 구간이 운행 중단되고 지하철역이 침수돼 전동차가 무정차 통과하는 일도 있었다.

집중호우 동해선 해운대~일광 운행 중단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23일 부산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 동해선 신해운대~일광 구간 전철 운행이 중지된 가운데 전동차가 부전~신해운대역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2020.7.24 ccho@yna.co.kr
집중호우 동해선 해운대~일광 운행 중단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23일 부산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 동해선 신해운대~일광 구간 전철 운행이 중지된 가운데 전동차가 부전~신해운대역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2020.7.24 ccho@yna.co.kr

23일 부산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오후 11시 50분 현재 강우량은 해운대 211㎜를 비롯해 기장 204㎜, 동래 191㎜, 중구 176㎜, 사하 172㎜ 북항 164㎜, 영도 142㎜, 금정구 136㎜ 등 부산 전역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사하구의 경우는 시간당 86㎜의 장대비가 단시간에 쏟아졌고, 해운대 84.5㎜, 중구 81.6㎜, 남구 78.5㎜, 북항 69㎜ 등 기록적인 시간당 강우량을 보였다.

차량 침수 잇따르는 부산 (부산=연합뉴스) 23일 오후 부산 문현동 한 도로가 침수해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2020.7.23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차량 침수 잇따르는 부산 (부산=연합뉴스) 23일 오후 부산 문현동 한 도로가 침수해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2020.7.23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지하차도·주차장 등이 폭우에 침수되는 바람에 차량에 고립된 이들이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안타깝게도 2명이 숨졌다.

이날 오후 10시 18분께 동구 초량동 부산역 제1지하차도에서 차량 여러 대가 순식간에 잠겼다.

당시 차량에는 8명이 있었는데 갑자기 불어난 물에 문을 제때 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19 구조대원이 도착해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을 구조했다.

동천 범람으로 물에 갇힌 주민 (부산=연합뉴스)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오후 부산 동구 동천이 범람하면서 인근의 한 아파트 1층이 침수됐다. 일부 주민은 대피소로 이동 중이다. 2020.7.24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sj19@yna.co.kr
동천 범람으로 물에 갇힌 주민 (부산=연합뉴스)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오후 부산 동구 동천이 범람하면서 인근의 한 아파트 1층이 침수됐다. 일부 주민은 대피소로 이동 중이다. 2020.7.24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sj19@yna.co.kr

하지만 60대 추정 남성과 30대 추정 여성은 익수 상태에서 발견돼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비슷한 시각 해운대구 우동 노보텔 지하주차장에서도 급류에 휩쓸린 3명이 구조됐다.

앞서 오후 9시 45분께는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한 이면도로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명이 구조됐다.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침수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오후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일대가 침수 돼 물이 차고 있다. 부산역은 무정차 통과 중이다. 2020.7.23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침수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오후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일대가 침수 돼 물이 차고 있다. 부산역은 무정차 통과 중이다. 2020.7.23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해운대구 반여동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구청에서 피해 상황을 확인 중이다.

오후 9시 26분께는 수영구 광안동에서 옹벽이 무너져 주택을 덮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주택에 있던 2명은 구조됐고 인근 주민은 긴급 대피했다.

오후 11시 30분 연제구 연산동 한 요양원 지하도 침수돼 3명이 구조되기도 했다.

버스까지 물바다된 부산 (부산=연합뉴스)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부산 한 버스에 도로 침수로 물이 차올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버스까지 물바다된 부산 (부산=연합뉴스)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부산 한 버스에 도로 침수로 물이 차올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오후 9시 20분께는 남구 용당동 미륭레미콘 앞 도로가 맞은 편 야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막혀 통제됐다.

비슷한 시각 중구 배수지 체육공원 높이 2m, 길이 40여m 담벼락이 넘어져 주차된 차량 4대가 파손됐다.

특히 시간당 최대 80㎜를 넘는 폭우에 만조시간(오후 10시 32분)까지 겹쳐 침수 피해가 컸다.

오후 9시 28분께 동구 범일동 자성대아파트가 침수되면서 주민 5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지난 10일 범람해 큰 피해가 났던 도심하천 동천은 이날 다시 범람해 차량과 주변 일대가 침수됐다.

호우 경보 해운대 물바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부산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서 도로가 물바다로 변해 있다. 2020.7.23 ccho@yna.co.kr
호우 경보 해운대 물바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부산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서 도로가 물바다로 변해 있다. 2020.7.23 ccho@yna.co.kr

불어난 물에 수정천도 범람해 주변 상가나 주택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부산시는 동천과 수정천 인근 주민에게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를 보냈다.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지하상가와 역사도 침수돼 전동차가 무정차 통과했다.

동해남부선 선로도 침수돼 부전∼남창 구간 무궁화호 열차, 신해운대∼일광 구간에서 전철이 각각 운행 중지됐다.

수영구 광안리 해변 도로는 바닷물과 불어난 빗물이 뒤섞여 침수되면서 해수욕장 구분이 힘들었다.

연산동 홈플러스 인근 교차로, 센텀시티 등 도심 도로 대부분에서 허벅지나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운행하던 차량이 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옹벽 붕괴로 아수라장 (부산=연합뉴스)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수영구 광안동 옹벽이 붕괴하면서 주택을 덮쳐 아수라장이 돼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현장에서 2명이 구조됐고, 6명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2020.7.23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itbull@yna.co.kr
옹벽 붕괴로 아수라장 (부산=연합뉴스)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수영구 광안동 옹벽이 붕괴하면서 주택을 덮쳐 아수라장이 돼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현장에서 2명이 구조됐고, 6명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2020.7.23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itbull@yna.co.kr

침수된 도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 안까지 물이 들어차 승객이 좌석 위에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해운대 중동 지하차도 역시 침수돼 차량 1대가 고립됐다가 운전자가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이외에 초량 1, 2 지하차도, 부산진시장 지하차도, 남구 우암로, 사상구청 교차로, 광무교∼서면교차로 등이 침수되는 등 부산 전역에서 도로가 부분, 전면 통제되고 있다.

물바다 된 부산 (부산=연합뉴스) 부산 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부산 연산동 한 도로가 침수 돼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2020.7.23 [부산 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물바다 된 부산 (부산=연합뉴스) 부산 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부산 연산동 한 도로가 침수 돼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2020.7.23 [부산 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구포대교 수위는 홍수주의보 기준인 4m에 못 미치는 2.9m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전국에 폭우가 쏟아져 낙동강 수위는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11시 기준 부산소방재난본부에 총 104건의 비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기상청은 24일 새벽까지 시간당 50∼90㎜ 내외, 25일까지 200㎜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물바다 된 부산 (부산=연합뉴스) 부산 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부산 연산동 한 도로가 침수 돼 있다. 2020.7.23 [부산 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ndbrother@yna.co.kr
물바다 된 부산 (부산=연합뉴스) 부산 지역에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부산 연산동 한 도로가 침수 돼 있다. 2020.7.23 [부산 경찰청 제공

[뉴스엔 이민지 기자]

가수 윤종신의 월간 음악 프로젝트 7월호 ‘기분’이 공개된다.파워볼게임

7월 29일 발매되는 7월호 ‘기분’은 ‘이방인 프로젝트’의 반환점을 통과한 윤종신의 기분을 담은 곡으로, 온전히 본인에게만 집중했던 지난 6개월의 시간과 지금의 기분을 가사로 표현했다. 윤종신은 한동안 자신에게 드리웠던 그 낯선 기분을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자유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7월호는 특별한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포크록 그룹 크래프트의 멤버이자 ‘에어 레코즈’의 설립자로 80년대 일본 시티팝을 대표하는 ‘하마다 킨고(Kingo Hamada 濱田金吾)’가 바로 그 주인공. 킨고의 오랜 팬이었던 윤종신은 먼저 협업을 제안했고, 그로부터 얼마 뒤 곡을 받았다. 밝고 경쾌하면서도 동시에 아련하고 애잔한 느낌의 정통 시티팝에 윤종신 특유의 정서가 더해진 가사를 얹어 완성됐다.

윤종신은 “킨고 씨는 제가 한창 음악을 흡수하던 어린 시절 활발하게 활동했던 일본 최고의 아티스트”라며 “이번 곡은 전적으로 킨고 씨의 선택과 결정에 의지했기 때문에 나는 창작자라기보다는 퍼포머나 실연자에 가깝다. 무조건 따르자는 마음으로 킨고 씨가 만든 음악을 구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6월호 ‘그래도 SUMMER’ 이어 또 한 번의 시티팝을 선보일 윤종신의 7월호 ‘기분’은 29일 오후 6시 각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

[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가수 겸 배우 엄정화가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으로 시선을 강탈했다.

엄정화는 지난 23일 인스타그램에 최근 진행한 화보컷 여러 장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한쪽 어깨와 다리가 드러난 밀착 원피스를 입고 여전한 몸매를 드러낸 엄정화의 모습부터 누드톤 원피스에 망사 패턴이 인상적인 드레스를 걸친 엄정화의 카리스마 있는 눈빛 등이 담겼다.

엄정화는 몸에 딱 달라붙는 의상에도 완벽한 몸매를 뽐내며 눈부신 미모를 자랑했다.

한편 엄정화는 오는 8월 12일 영화 ‘오케이 마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오케이 마담’은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난데없이 비행기 납치 사건에 휘말린 부부가 평범했던 과거는 접어두고 숨겨왔던 내공으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초특급 액션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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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대전, 유현태 기자 이성필 기자] “마지막 월드컵이 35살 때였어요. 사실상 공격수로서는 은퇴였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인정받던 황선홍(52)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에게 1994 미국월드컵은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 어떤 활약을 펼쳐도 고칠 수 없는 깊은 상처, 같은 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한일전에서 3-2 역전승을 이끌고 대회 득점왕까지 차지했지만, 월드컵의 실패는 그대로 남았다.

당시 축구 선수 황 감독의 나이는 20대 중반. 한국 축구의 기대를 고스란히 젊어지기에는 너무 젊었다. 선수 생활이 창창했지만, 실패는 아팠고 심각하게 미래를 고민했다. 결론은 월드컵에서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월드컵이 안긴 아픔은 월드컵으로 자가 치유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네

월드컵이 안긴 상처는 오히려 황 감독이 축구에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 월드컵을 한 해 앞뒀던 1997년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달렸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에 월드컵 첫 승리를 안기겠다는 각오였다.

“질타를 많이 받았다. 정신적으로 약하거나, 오기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어요. 엄청난 시련이었으니까요. 길을 다니면 고개를 들지 못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축구에 엄청난 관심이 있었어요. 두문불출하며 집에서 몇 날 며칠을 생각해도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것 말고는 없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돌아간 ‘팬심’을 돌려놓는 것뿐이었어요. K리그에서 8경기 연속 골을 넣고 골든볼을 받아도 안 되더라고요. 월드컵에서 실패하면 월드컵에서 만회해야 했으니까요.”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1년 4개월 동안 독일과 한국에서 재활했어요. 독일에서 순리대로 잘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 포항에서 혼자 했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절제했고 일정대로 알아서 했어요. 목표는 딱 하나. ‘월드컵에 나가겠다’는 분명하고도 정확한 목표가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간절하게 준비했던 프랑스월드컵은 황 감독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남았다. 1998년 6월,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치른 한중 정기전에서 황 감독은 상대 골키퍼와 충돌하며 무릎을 크게 다쳤다. 최종 엔트리에 속해 프랑스까지 날아갔지만, 출전 불가였다. 명예회복을 위해 칼을 갈았으나 불운이 그를 덮쳤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나가서 뛰었어요. (미국월드컵은) 정말 팀의 주축이었는데 전성기 시절 해보고 싶었던 때는 다 말아 먹었고요. (프랑스월드컵은) 31살이었는데 정말 (기량이) 무르익고 축구도 좀 보이고 옆 사람도 좀 활용하고, 최용수(현 FC서울 감독)와 투톱도 가능했어요. 기대를 갖고 대회를 준비했는데 중국전에서 다치면서 뛰지 못했어요. 월드컵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16강 좌절의 아픔을 안고 귀국한 그해 7월, 세레소 오사카 유니폼을 입고 일본에 진출했다. 수원 삼성을 거쳐 가시와 레이솔(일본)에서 유상철, 홍명보와 함께 뛰었다. 세레소에서는 1999년 J리그 득점왕도 차지했다. 그래도 마음속에서 덜지 못한 부채, 월드컵에서 한국에 첫 승을 안기겠다는 의지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당시 축구 선수로서는 환갑을 넘었다는 35살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다렸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해외에 나가야 하나, 아니면 그만둬야 하나 말이죠.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 뛰면서도 은퇴는 한국에서 하겠다고 했거든요. 일본에서 득점왕도 하고 좋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월드컵’이라는 부채가 있었어요.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서 인식을 바꾸고 은퇴하겠다고 말했어요. 1998년에는 성공하지 못해서 1994년의 빚을 갚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목표는 하나였어요. 지금이 좋아도 만족하지 못했으니까요.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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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히딩크가 부를 것이라 믿었던 황새, 스스로 강해졌다

황 감독의 현역 시절을 두고 무겁게 압박해오는 관심과 그에 따른 짙은 그림자가 공존했다고 평가한다면 과언일까. 큰 기대가 있었지만, 잦은 부상과 심리적 부담 때문에 원하던 결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월드컵이라는 기준에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선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한국 축구 구세주’로 등장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처음부터 황 감독을 대표팀에 호출한 것은 아니다. 2001년 1월 히딩크 감독이 부임 후 약 5개월여 소집 명단에 들지 못했다. 2001년 5월 카메룬과 친선 경기를 앞두고서야 대표팀에 부름을 받았다.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는 동안에도 조급해지지 않았다. 황 감독은 “자신감이다.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은 가지고 있다. 내 능력을 믿는 것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일본에 있을 당시에 월드컵이 오기 전 저를 한 번은 부를 것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했어요. 몸 관리도 잘했고 경기장에서도 무언가 더 보여주려고 했어요. 핌 베어벡 코치도 보러 왔었어요. 대표팀에는 선수들이 들락날락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부르지 않더군요. 그래도 틀림없이 한 번 불려갈 것이고 그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월드컵에 갈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고 봤어요.”

‘태극마크’를 다시 한번 가슴에 단 뒤, 황 감독은 월드컵만 바라봤다. 간절한 마음 못지않게 긴장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잔디 위에서 경기력을 위해 구슬땀을 쏟으면서도 부상을 피하고자 조심했다. 1990, 1994, 1998년으로 이어진 3번의 월드컵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들 덕분이었다.

“마지막 월드컵이 35살이었어요. 사실상 공격수로서 은퇴하는 나이였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게 마음도 편안하고 의지도 다지고 제어하면서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요.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2002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걱정했던 것은 부상이었어요. 책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불안감 제어를 위해 굉장히 노력했는데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겠더라고요. (폴란드전까지) 1주일, 6일, 5일 줄어가는데 훈련하다 발목이라도 삐끗할까 너무 두려운 거죠. 마인드컨트롤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치른 잉글랜드(1-1 무), 프랑스(2-3 패)와 평가전을 치르고 본선으로 향했다. 4강 신화는 채 시작되기도 전. 한국 대표팀의 목표는 우선 ‘눈앞’에 있었다.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해내지 못했던 비원의 첫 승이었다. 황 감독이 1988년부터 무려 15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그토록 원했던 목표였다.

“2002년이 (1994년보다) 더 절실했어요. 경기 전 인터뷰를 하는데, 웬만해서는 ‘내일 꼭 골을 넣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지 않아요. 보통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폴란드전을 앞두고 ‘내일 기회가 오면 반드시 골을 넣겠습니다’라고 인터뷰한 기억이 있어요. 1994년보다 훨씬 강했으니까요. 저 스스로도 강해져야 했고요.”

“그때는 첫 승이 하고 싶었다. 2002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배수의 진을 치고 치렀어요. 한 경기, 한 경기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게 마지막이 될 수 있었어요. 내가 득점하는 것도 중요했고, 승리하면 최고였을 거에요. 그렇지만, 그동안 1승도 못했으니까. 1승만이라도 내 힘으로 하게 하고 은퇴하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득점도 하고 1승을 했으니까 더는 바랄 수 없는 피날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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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悲願)의 월드컵 첫 승, 절실했던 황새의 발이 만들었다

폴란드전은 한국의 월드컵 성공 여부를 가늠할 경기였다. 잉글랜드,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했어도 본선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기대감과 부담감, 두려움까지 온갖 감정이 범벅이 됐을 경기다. 하지만, 팬들의 뜨거운 응원 앞에서는 그 많은 감정이 고스란히 책임감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팬들의 응원에 보답해야겠다는 각오였다.동행복권파워볼

“준비 운동을 위해 운동장으로 나가니 관중이 드문드문 있더군요. 운동을 마치고 나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가는데…와. 완전히 빨갛고 옆에 사람 이야기도 안 들리더라구요. 애국가가 나오고 태극기가 올라가는데, ‘아, 운동장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지배했어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 못 이기면 못 걸어 나간다는 생각. 가슴에서 이만한 게 올라왔어요.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강했거든요.”

황 감독은 폴란드전을 통해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史)에서 중요한 골 중 하나를 넣었다. 월드컵 첫 승 경기에서 얻은 선제골이자 결승골이 된 골, 전반 26분 왼쪽 측면에서 연결된 이을용(현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 코치)의 크로스를 골문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이)을용이를 제가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그 짧은 시간, 슬로비디오 같더라구요. 눈이 딱 마주쳤는데 제가 앞으로 빠져나갔거든요. 대인방어 하던 수비가 나를 따라오지 못했어요. 느낌으로 알았죠, (이을용과) 눈이 맞았고 (볼이) 올라올 것이라는 걸요. 그런데 잘 주면 잘 슈팅하겠는데 정말 애매하게 왔어요. 튕기기도 애매하고, 바로 슈팅하기도 애매했죠. 물기가 있으니 그라운드에 튕기면 뜰 것 같았어요. 그대로 발에 대는 것이 조금 더 나았는데 가까스로 댄 거죠. 볼이 이렇게 휘어져 들어가는데, 예지 두덱 골키퍼가 딱 뜨는데 골대 사이로 지나가는 게 보이더라구요. 그게 정말 좋았죠.”

황 감독은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했다. 1994년 독일전 골은 너무도 뒤늦게 터져 기쁨을 나눌 새도 없었지만, 폴란드전의 귀중한 골은 달랐다. 득점 뒤 냅다 벤치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박항서(현 베트남 대표팀 감독) 코치에게 안겼다. 굳이 벤치로 달려 감독이 아닌 코치를 얼싸안은 이유는 ‘원 팀’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골을 넣었을 때 감정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코너 깃발로 가려고 하다가 아내와 약속한 것도 있고, 벤치로 가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경기를 못 뛰는 선수들, 윤정환이나 이런 선수들이 있었어요. (주변 선수들이) 잡으러 오니까 막 비키라고 (손짓) 했거든요. 한 70m 정도 됐는데 뛰어가서 안겼죠. 선참으로서 같이 느끼면서 힘을 받기를 원했어요. 골을 넣으면 항상 벤치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힘들어서 3~4분여 정신 차리지 못했어요.”

“감독님은 늘 거기(벤치)에 계시는 분이었어요. 팀의 중심을 잡고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었죠.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조금은 소외당하게 되거든요. 경기에 뛰는 우리가 주축이지만, 같이 고생하는 이들 아닌가요. 코치님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감독님이 주이고 코칭스태프는 약간 소외당하는 처지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분위기를 일신하고 싶었죠. 우리는 하나다, 뭐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물론 박 감독의 청탁처럼 느껴지는(?) 묘한 부탁도 있었다.

“사실 히딩크 감독님은 선발 명단을 미리 알려주지 않아요. 경기 당일 알려줬어요. 박 선생님이 전화가 와서 ‘선발로 나가니까 몸 관리를 잘하라’고 하시더군요. 끊으려는데 농담조로 ‘골 넣으면 나한테 오라’고 하셨어요. 벤치로 가다 보니까 ‘박쌤’이 보였는데 참 좋았어요. 그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아버님이 1996년에 돌아가셨는데, 하늘을 보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이기고 나서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제가 정말 절실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했거든요. 지금도 아주 중요한 순간, 포항 스틸러스, FC서울에서 우승했던 그 마지막 순간, 이겨야 우승하는 어려운 순간에, 그게 교훈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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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전 연장 전반 11분, 부폰의 선방이 없었다면…안정환의 골든골은 없었다?

폴란드전 승리는 황 감독 개인을 넘어 대표팀 전체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간 한국 축구를 옥죄고 있던 ‘월드컵 첫 승’이라는 굴레가 사라지자 한계가 없어진 것, 이제 어떤 팀을 만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기세를 살려 한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썼다.

“(안)정환이도,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도, (유)상철이도 그렇고. 주축들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어요. 다 같은 세대니까요. 저나 홍 전무는 조금 더 책임감이 심했어요. 대표 선수를 16년이나 했는데 월드컵에서 1승도 못했다니, 이대로 은퇴하면 후배들한테 해줄 말도 없었거든요. 16강은 둘째치고 1승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우리는 월드컵 경험이 많았어요. 나갔다가 실패하고를 반복하니 반신반의했구요. 불안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될 수 있어’라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날에는 또 불안하더라고요. 선제 득점한 경우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선제골 넣고 2-0으로 이긴 것이 굉장히 큰 힘이 되더군요. ‘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팀에 퍼졌어요. 다음 경기부터는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었죠.”

눈부신 성공이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도 있게 마련이다. 황 감독은 득점 행진을 이어 가지 못한 것을 정말 아쉬워했다. 황 감독은 기세를 타면 말리기 어려운 유형의 공격수였다. 몰아치기에 능하다는 뜻이다. 1995년 K리그에서 8경기 연속 골을 기록한 것은 그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황 감독은 “한 번 골을 넣으면 계속 흐름을 이어 간다”라고 자랑(?)했다. 미국과 조별 리그 2차전에서는 원했던 페널티킥을 차지 못했고, 이탈리아와 16강에서는 1-1 동점으로 흘러가던 연장 11분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얻어 시도한 재치 있는 프리킥이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 골키퍼의 손에 막혔다. 경기장 조명에 공이 숨는 불운까지 겹쳤다.

“부폰, 아! 그건 원래 막지 못하는 거였어요. 정말 약하게 찼는데, 조금 더 세게 찼으면 막지 못하는 거였어요. 저는 원래 (세트피스) 키커가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차겠다고 벤치에 말했거든요. 그 이후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아쉬웠어요.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을 제가 차고 싶었어요. 벤치에는 제가 차겠다고 했어요. 저는 한 번 넣으면 계속 넣거든요. 그런데 벤치에서 다른 사람(이을용)이 차라고 하더라구요. 한 번 더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부상 때문에 포르투갈전을 뛰지 못했고 이탈리아전에 나섰어요. 핑계 같지만, 라이트에 볼이 숨었어요. (후반 막판 기회에서) 크로스가 오는데 가슴 트래핑을 해놨어야 했어요. 볼이 떴으면 오버헤드킥을 하던가 어떤 식으로든 슈팅해야 했어요. 하필 볼이 라이트에 숨어서 정확히 못 댔죠. 한 골은 더 넣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연장 전반) 그 프리킥은 감아 차는 척하면서 (수비벽)아래로 킥을 했죠.”

황 감독은 월드컵 첫 승을 선수 생활 하는 동안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꼽았다.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그 순간은 차마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승리를 얻겠다는 마음은 선수 생활 내내 수없이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단다. 축구 선수의 인생을 전부 바치고 난 뒤, 모두가 늦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의 눈빛을 보낼 때 간절히 원했던 목표를 이뤄 그렇다.

“(첫 승이)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고 감독을 하면서도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경기했고 이런 것들이 기억이 나요. 감독으로서 어려운 경기를 앞두고 있으면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준비를 해요.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말이죠. 그래도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 봐요. 절실하게 하고 집중하고 준비하면 이뤄진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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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인정하는 드라마틱 축구 인생

황선홍. 한국 축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역대 A매치 출전 횟수로는 12위(103경기)에 올라 있고, 득점 부문에서는 ‘차붐’ 차범근(67) 전 수원 삼성 감독(136경기 58골)에 이어 역대 2위(50골)를 기록 중이다. 월드컵 4강이라는 빛나는 성과도 붙어 있다.

하지만, 그의 축구 인생을 되짚어보면 기쁨보다는 고난의 순간이 많았다. 부상도 잦았고 팬들의 환호만큼 비난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을 축구 인생, 그래도 황 감독은 현역 시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성공은 물론이고 고난의 순간마저도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이었으므로.

“드라마틱해요. 저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됐어요. 우여곡절도 많았고 힘들었어요. 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으니까요. 지도자 생활하면서도 똑같지만, 축구를 하면서도 힘들었어요. 삶이란 다 그런 것 같아요. 꼭 축구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어려운 일도 있을 것이고, 그만둘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을 축구에서 밟아온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해지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차분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한테는 소중한 추억이자 경험이니까요.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했던 것이 결실을 봤으니 좋았다고 생각해요.”

한국 공격수의 계보를 이었던 황새였기에 환희와 고통은 공존했다. 어쩌면 공격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으로 쓰라면 ‘공격수개론’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을 정도로.

지난 13일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 첫 브리핑에서 원창호 심판위원장이 설명하고 있다. 박준범 기자
지난 13일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 첫 브리핑에서 원창호 심판위원장이 설명하고 있다. 박준범 기자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겉으로는 소통인데 내부적으로는 불통인 모양새다.

K리그는 최근 심판 판정을 두고 매 라운드마다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어느 리그나 경기 결과에 영향을 끼치거나 애매한 상황에 놓이는 심판 판정은 논란거리가 된다. 그런데 최근 K리그에서 벌어지는 판정 이슈는 강도가 센 편이다. 그렇다고 K리그가 다른 리그보다 판정 기준 자체가 모호하거나 심판 자질이 크게 떨어져서 발생하는 상황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다수 축구인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두고 소통을 목적으로 시행 중인 대한축구협회(KFA) 심판위원회 브리핑을 지적하고 있다.

올시즌부터 K리그 심판 운영을 전담하는 KFA는 공정한 판정을 약속하면서 판정 논란이 발생하면 심판위가 브리핑에 나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단, 기준도 명확하게 했다. 경기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논란이 된 판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시행 전부터 KFA 내부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브리핑을 두고 심판위에서 직접 하느냐, 아니면 홍보실에서 하느냐를 두고도 얘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판정 논란을 주제로 미디어 앞에서 브리핑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따른다. 일종의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하는 것을 두고 누가 총대를 멜 것이냐는 얘기였다. 결국 심판위가 브리핑을 책임지기로 했다.

문제는 미디어나 대중과 소통에 능통한 홍보실과 다르게 심판위가 브리핑을 주도하다 보니 적지 않은 잡음이 나오고 있다. 시즌 초반 일부 경기에서 판정 논란이 나왔지만 심판위는 약속한 브리핑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내부적으로 ‘브리핑을 열 만한 사안’이냐를 두고 견해가 크게 엇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브리핑을 연 건 지난 13일 수원-포항전 김민우(수원)의 골 취소 논란이다. 모두가 오심이라고 여겼지만 심판위는 정심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자리엔 수원 관계자도 참석하면서 험한 말이 오갔다. 이를 두고 복수의 축구인과 한 전직 심판은 “한마디로 긁어 부스럼, 논란을 스스로 자초한 꼴이다. 정심이라고 판단했으면 심판위에서 그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여러 말이 나올 순 있지만 그것을 굳이 브리핑을 열고, 그것도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 구단 관계자까지 출입시켜서 분위기를 험하게 한 모양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1일 두 번째 브리핑 때 강치돈 강사가 오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지난 21일 두 번째 브리핑 때 강치돈 강사가 오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두번째 브리핑이 열린 지난 21일엔 주제가 달랐다. 앞서 열린 K리그2 전남-부천전에서 하승운(전남)의 돌파 과정에서 나온 주심의 페널티킥 선언과 K리그1 수원-성남전에서 이스칸데로프(성남)의 골 취소 판정이 다뤄졌는데 모두 오심으로 바로잡았다. 그런데 ‘정심 브리핑’을 했을 때 마이크를 잡았던 심판위원장은 ‘오심 브리핑’을 하는 이 날엔 참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심판위원장은 브리핑 전날까지 성남 측에 강하게 목소리를 냈다. 오심이 된 건 성남 이스칸데로프가 골을 넣었을 때로, 득점 과정에서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던 김현성의 머리에 공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현장에서 비디오 판독(VAR)까지 거쳤는데 심판위원장은 경기 다음 날 성남 관계자에게 “공이 (김현성 머리에) 맞은 것을 봤다”면서 정심을 주장했다. 이후 성남은 오심을 입증할 만한 영상 자료를 심판위원장에게 모바일 메시지로 전달했다. 그런데 이후 답장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심판위는 오심을 인정했다. 그런데 KFA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 당일 현장을 찾은 성남 관계자에게 “우리와 소통을 더 해야 하지 않았느냐”며 “왜 (언론에) 이슈화시켰냐”고 질책했다. 하지만 관련 보도는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문제 의식을 품고 다룬 게 대부분이다. 그토록 소통을 외쳐댄 KFA가 판정 관련 보도가 나갔다고 구단에 원망하듯 항의하는 것 자체를 두고 여러 축구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파워볼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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